지난 세월, 집에 있던 크고 튼튼한 플라스틱 통에 쌀을 보관했고 아무런 이상 없이 잘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작년 여름에 잠시 방심하는 사이에 쌀통에 문제가 생겼는지 새하얀 쌀이 어딘가 거무적적하게 그늘진 색으로 변했고 자세히 살펴보니 아주 미세한 먼지 같은 곰팡이가 쌀통을 습격했습니다. 그래서 여기저기 알아보다가 처음에는 전통 옹기를 들이고 싶었는데 너무 무겁고 과한 느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민 끝에 요즘 유행한다는 진공 쌀통을 샀어요. MISO라는 브랜드의 진공 쌀통 제품이었는데요, 뚜껑 열고 닫을 때 귀찮고(많이 귀찮음), 충전할 때 귀찮고, 새벽에 갑자기 진공 작동되는 소리에 놀라기도 하지만 성능은 만족하며 살고 있습니다. 아, 용량도 적은 편이라서 자주 채우는 편이에요.
그런데 나중에 알게 되었어요. 작년 여름의 쌀통 곰팡이 문제는 쌀통이 문제가 아니라 쌀통으로 옮기기 전 쌀포대 보관을 잘못했던 것이었음을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마트에서 샀던 쌀이 있었는데 마침 비슷한 타이밍에 고향에 계시는 부모님이 시골 쌀을 보내주셔서 마트에서 산 쌀이 제법 오래 방치되었거든요. 그 사이에 장마가 오고 베란다에 습기가 차면서 쌀포대 자체에 습기 때문에 이미 쌀에 곰팡이가 슬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쌀과 쌀통에 대한 시행착오를 겪고 깨달은 점은 쌀은 무조건 가장 최근에 도정한 쌀을 적당량만 사서 좋은 환경에서 보관하며 빨리 먹어 해치우자였습니다. 저는 진짜 싸구려 쌀만 아니면 20kg 기준 5만원~7만원 정도 가격의 쌀은 다 비슷비슷하게 느껴져서, 아무 쌀이나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가격 보고 사기도 하고 가끔은 제품 이름이나 지역명만 보고 사기도 했었어요.
그러다가 우연히 만난 보성다향미! 보성은 차로 유명한데 다향미는 뭐지? 세계적인 녹차생산지역인 전라도 보성군 농협쌀조합에서 생산한 쌀이라고 하니, 벼와 녹차의 만남은 과연 어떤 것일까 궁금해서 자세히 살펴봤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놀랍게도 세계적 녹차생산지역인 전라도 보성군 농협쌀조합에서 생산한 보성다향미는 녹차와 아무런 상관이 없었습니다. 보성이라는 지역만 같았네요. 보성강 맑은 물과 비옥한 토양에서 재배한 것으로 밥맛이 우수한 벼를 사용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주문이 접수되면 그때 즉시 도정에 들어가서 갓 도정된 쌀을 배송해준다고 합니다.
저는 바로 이 부분이 중요한 것 같아요. 대형마트에 진열된 쌀은 아무래도 도정한 시점이 지났을 것이고 온라인으로 주문했을 때 즉시 도정하는 쌀이 조금이라도 더 신선하고 맛있는 밥을 지어줄 것 같았습니다. 녹차와 아무 상관없다는 사실을 알고 잠시 실망했었지만 당시에 보성에 갔던 추억도 생각나고 다향이라는 향기로운 이름도 마음에 들어서 한 포대 구입했었지요. 그리고 세월이 흘러 저는 세 포대를 추가로 주문했습니다.
처음 먹었던 보성다향미가 참 맛있었거든요. 그동안 먹었던 쌀과 비교하면 조금 더 촉촉하면서도 부드러운 느낌이었어요. 꼬들꼬들하게 드시는 분들께는 비추천입니다. 약간 질게 밥 해드 시는 분들께는 한 번은 보성다향미 사서 드셔 보시라고 하고 싶네요. 압력밥솥 기준입니다. 결론은 택배가 도착하고, 집에 백미 20kg 농협쌀이 세 포대나 들어오니 마음이 든든하고 행복합니다. MISO 진공 쌀통도 기뻐서 뿌르르르르르 진공을 시작하네요. 보성다향미 맛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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