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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은평구에 갔습니다. 연신내 들렀다가 갑자기 황사 속을 걷고 싶어서 무작정 걸었어요. 보통 조금 걸으며 동네 구경하면 기분이 좋아지는데 황사 때문인지 기분도 좋아지지 않고 배도 살살 고픈 것 같아서 슬슬 집으로 가려고 가까운 지하철 역을 찾았습니다. 구산역이 바로 앞에 보이는데 어떤 카페의 통유리 앞에서 잠시 멍하니 서있게 되었습니다. 어떤 베이커리 카페 안에서 사람들이 빵을 고르고 있는데 너무 맛있어 보이는거에요.

 

집에 가던 나를 멈추게 만든 쿠아레비 입구

 

그냥 지하철 타러 들어갈까? 잠시 들어가서 빵구경이나 해볼까? 심각하게 고민을 하다가 점심에도 샌드위치를 먹어서 저녁은 꼭 집에 가서 쌀밥을 먹으리라 다짐하며 그냥 빵구경만 하기로 하고 카페 문을 열었습니다. 밖에서 보기에는 아주 작아보였는데 물 열고 들어가는 순간 공간이 넓고 아늑하고 너무 예쁘고 마음에 들었습니다. 가게 안에 사람이 많았는데 다행히 테이블 한 곳이 비어 있어서 언능 자리를 잡고 시원한 아이스라떼 한 잔 시키고 가게를 구경했습니다.

 

쿠아레비 입구 왼쪽은 빵이 가득
쿠아레비 입구 오른쪽에는 책과 잡지가 가득
쿠아레비 큰 테이블 위에서는 문화매거진 PAPER 기획 전시 중

 

입구 쪽에 책도 많이 보였는데, 책이라고 그냥 책처럼 보이는 것만 가득 꽂아 놓은 카페도 많잖아요. 그런데 여기는 뭔가 주인장의 감성이나 문화적 취향을 느낄 수 있는 것 같았어요. 며칠 전에 재미있게 봤던 채널예스도 보이길래 임경선 작가님 반가워서 찍어봤어요. 그리고 입구 바로 앞 공간에 큰 테이블이 있었는데 그 위에서 문화매거진 PAPER 특별전시를 하고 있는거에요. 책 표지가 모두 너무 예뻐서 마치 그림 전시를 보는 기분이었네요.

 

문화잡지 페이퍼 전
계절마다 나오는 책이라서 그런지 커버마다 눈부시게 강렬하다 

 

아이스라떼가 나왔는데 오래 걸었더니 저도 모르게 게토레이 마시듯 벌컥벌컥 원샷을 해버리고 남은 얼음에 물까지 더 부어서 또 벌컥벌컥 마셨습니다. 숨도 고르고 수분도 보충되었으니 본격적으로 빵 구경을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여기 쿠아레비라는 카페는 빵으로 엄청 유명한 곳이었나봐요. 빵을 진열해놓은 공간은 그렇게 크지 않아서 카페의 보조 역할인 줄 알았는데...

 

제가 들어온 이후로 테이블에 자리는 없는데 사람들이 정말 쉬지 않고 들어와서 쟁반과 집게를 들고 빵을 고르고 사서 포장해가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광경을 본 제가 가만히 있을 수 있었겠습니까? 쿠아레비 빵지순례가 잠시 멈춘 사이에 살짝 가서 빵구경을 하고 빵냄새를 맡고 빵사진을 찍고 소박하면서도 단촐하면서도 빵 각자의 카리스마가 흘러넘치는 모습에 빵맛을 안보고 갈 수는 없었네요.

 

쿠아레비 앙버터 샌드. 다음에는 꼭 오리지날 앙버터를 먹을테얌.
이것이 바로 쿠아레비 추천작 앙버터 오리지날
올리브 마카다미아가 쿠아레비의 가장 인기빵이래요. 진짜 사람들이 많이 사가더라고요.
백프로라는 이름이 돋보이는 백프로 통밀 식빵. 정말 백프로 같다.
쿠아레비 빵 다 맛있겠다.
어떤 어르신이 쿠비 파이를 매장에서 드시고 나가면서도 또 사서 가지고 가셨음. 맛이 궁금함.
타르트 타르트 신나는 노래!

 

빵 진열대에 가보니 인기제품, 대표메뉴 등 쿠아레비의 라인업을 알 수 있도록 귀여운 메모를 하나씩 해놓으셨더라고요. 저는 세상 어느 빵집을 가든 2가지 빵의 맛으로 그 집을 평가하는데 하나는 걍 식빵이고 또 하나는 걍 단팥빵이고, 가끔 앙버터를 파는 집이면 앙버터를 꼭 먹어봅니다. 오늘은 단팥빵과 앙버터 샌드를 먹어봤어요. 오리지널 앙버터를 맛보려고 했는데 며칠 전에 치과를 다녀와서 조금 걱정되더라고요. 그래서 부드러운 빵 두가지만 맛보고 왔습니다.

 

왜 들어와서 빵만 사가는 사람이 많은지, 왜 사람들이 계속 들어와서 -내가 먹는 빵의 위치 정도는 눈감고도 안다는 식으로 휙 들어오자마자 순식간에 먹을 빵만 딱 골라 담고, 왜 연세 많으신 분들도 들어와서 일하시는 분들과 편하게 대화하고 테이블에서 빵 드시고 계산하고 나가면서 또 똑같은 빵을 포장해서 나가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단팥빵도 정말 담백하고 푸짐하고 행복한 단팥빵이었고 앙버터는 치아 상태만 좋아지면 당장 오리지널 앙버터를 먹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무포장가게라니! 다음에는 텀블러 들고 갈게요!

 

우연히 발견한 예쁘고 맛있고 편안했던 쿠아레비 베이커리 카페. 나중에 나오기 전에 사람들이 이야기를 들어보고 검색해보니 제가 오늘 발견한 쿠아레비는 구산점이라고 분점 같은 개념이었나봐요. 쿠아레비 본점은 책방비엥이라는 동네서점과 같이 운영되고 있다고 하는데 다녀오신 분들의 블로그를 보니 정말 정말 사진만으로도 예쁘고 책도 여기보다 더 많고 빵도 여기보다 더 많아서 꼭 가보고 싶네요.

 

그리고 책방비엥이라는 곳은 2015년부터 은평구에 자리를 잡았다고 하네요. 당신의 사심이 공존하는 동네서점이라는 슬로건을 가지고 좋은 책을 발견할 수 있는 취향 가득한 공간을 지향하신다고 합니다. 개인의 다양한 이야기가 담긴 독립출판물과 책방지기의 사심으로 큐레이션한 도서를 제안하고 있다고 해요. 제가 갔던 쿠아레비 구산점에 있던 책들도 아마도 책방비엥의 사장님이 사심으로 큐레이션한 책인 것 같네요.

 

쿠아레비 구산점은 6호선 구산역 3번 출구에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3번 출구 에스컬레이터 공사로 폐쇄되어 있으니 4번 출구로 나오셔서 건널목 하나 건너셔야 합니다. 그리고 책방비엥은 아직 안가봤지만 궁금하신 분들은 찾아가보세요. 책방비엥 주소는 은평구 진흥로 101, 3층이래요. 문의전화는 070-8830-7870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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