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 쓰고 쓰고 쓰디쓴 한약 냄새나는 감기약 일주일치를 먹어도 소용없던 나에게 테라플루는 기적과 같았다. 감기가 계속 붙어 있으니 더 독한 약을 찾게 되고 목구멍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알약의 수가 늘어나더니 나중에는 여섯 알이나 삼켜야 했다. 그때 친구가 사준 테라플루의 맛과 효과를 잊을 수 없어서 아직도 감기 기운이 있으면 일단 테라플루를 마시곤 한다. 증상에 따라 사람에 따라 잘 받는 사람도 있고 효과가 없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딱 맞는 것 같다.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리는 3월이었다. 뜬금없이 함박눈이 내리더니 몸이 으실으실 춥고 열이 나고 어지럽고 감기 몸살 기운에 하루 종일 헤롱 거리며 살고 있었다. 내가 처음 마셨던 테라플루는 레몬향이었던 것 같은데 말 그대로 따뜻한 레몬티를 마시는 기분으로 큰 머그잔을 후후 불며 마셨던 기억이 난다. 다 죽어가던 인간이 그 상황에 새끼손가락도 살짝 들어 올려 우아하게 마시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두툼한 종이 포장지에 크기는 갤포스 팩보다 약간 큰 정도. 뜨거운 물에 가루를 넣을 때 종이봉투를 타고 사르르 흘러내리는 소리가 좋았다. 너무 아름다운 소리였는데 텍스트로 정확히 표현하기가 어려워서 아쉽다. 사르르? 스르르? 샤가각? 츄츄츄츄츄? 뭐 이런 소리였다. 친구가 사 온 테라플루는 나이트타임 버전이었는데 제품이 두 가지로 생산되고 하나는 데이타임 하나는 나이트타임 이렇게 두 가지였다. 둘 중 나이트가 더 독하고 졸림 현상이 있지만 약효가 세다고 들었다.
수면바지에 수면양말을 신고 테라플루 나이트타임을 큰 사발로 마시니까 진짜 신기하게 바로 졸음이 몰려왔다. 그대로 잠들었고 그날 밤 수면바지는 땀에 흠뻑 젖었다. 그렇게 미친 감기를 몰아내기 위해 테라플루와 함께 싸운 다음날, 온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었지만 서서히 기분나쁜 감기 기운이 사라지기 시작했고 곧 일상에 복귀할 수 있었다. 살다 살다 처음으로 약 따위에 고마워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밥 먹고, 약 먹고, 밤에 푹 자라고 만든 버전인 것 같다.
결론은 맛있고 예쁘고 효과도 좋은 감기약 테라플루가 생각나는 시간이다. 그렇다. 오랜만에 제대로 된 감기가 왔다. 코로나 때문에 병원도 무섭고 일단 테라플루 마시고 푹 자야겠다. 오랜만에 굵은 수면바지를 꺼냈다. 오늘밤 흠뻑 젖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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