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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OHAA SPRING

 

봄 같지 않은 봄을 보내고 있었다. 아침에는 일어났고 밤에는 잠들었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었고 목이 마르면 물을 마셨다. 봄이 왔다고 따로 봄나물을 챙겨 먹거나 길고 질긴 덩굴식물로 만든 바구니에 샌드위치를 담아 잔디밭으로 나갈 일도 없었다. 평범하게 부지런하던 중이라 봄을 만끽하는 누군가가 부러울 여유도 없었다. 그냥 열심히 먹고 자고 일하며 프로야구나 쓰리쿠션 당구대회 중계나 보면서 아름다운 계절을 아름답게 썩히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제대로 봄 같은 봄을 보내고 있다. 택배 하나가 도착했는데 작은 봉투 속에 엄청난 봄이 들어있었다. 그 봄의 이름은 HOOHAA 후하라고 했다. 입술을 모으고 바람을 불어넣을 때 나오는 소리 HOO 후와 사람들이 모여 재잘거릴 때 이따금 터져 나오는 웃음들의 HAA 하. 이렇게 HOO 후와 HAA 하가 만나서 HOOHAA 후하가 되었다는 글을 어디선가 읽었고 거창한 의미가 없어서 더욱 마음에 들었던 이름 후하였다.

 

HOOHAA SPRING

후와 하가 만난 후하가 봄을 데리고 내 방에 들어왔으니. 후 하 봄 모두 반갑게 맞이하며 입술을 모아 바람을 후하고 불어보았다. 빈 방에서 후후거리고 있으니 마음은 괜찮은데 입과 폐가 무척 쪽팔려하는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에 크게 하하 웃기도 했다. 하는 사람들이 모여 재잘거릴 때 이따금 터져 나와야 하는데 물리적으로 하 소리를 내는 행위만 하고 있으니 갑자기 쓸쓸해졌다. 사람은 사람을 만나야 한다. 당장 만날 사람은 없으니 혼자 HOOHAA 후하와 봄을 만나자.

 

 

후하와 함께한 지난 겨울

 

HOOHAA 후하를 처음 알게 되었던 지난겨울, 어느 새벽에 LOVE POTION 사랑의 주문이라는 곡을 반복해서 들었다. 혼자 방에서 뒹굴다가 너무 배가 고파서 싸구려 토스트용 식빵을 마요네즈에 적셔 먹고 있었는데, 후하의 음악이 시작되면서 식빵은 나의 뱃속으로 들어가 위액을 과다 분비했고 후하는 나의 꿈속으로 들어가 온갖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덕분에 밤새 뒤척였고 해가 뜨기 전에 다시 일어나 개비스콘을 짜 먹고 목에 감긴 이어폰 줄을 풀다가 다시 잠들었다.

 

잠결에 후하의 주문이 들어와서 제대로 접수하지는 못했지만 후하는 이렇게 말했다. 나에게 빠지라고. 정신 차리지 말라고. 사랑에 빠지라고. 너의 전부를 걸라고. 걱정 따위는 말라고. 그래서 나는 후하에게 빠지고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나의 전부를 걸어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후하의 주문은 정말 강력했다. 나는 그날 이후로 꼭 잡은 후하의 손을 놓지 않았다. 혼자인 밤은 계속되었지만 후하와 함께라면 평소처럼 우울하게 잠에서 깨도 전혀 초라하지 않았다.

 

후하의 첫 EP [SPRING]의 다섯 곡
HOOHAA가 똑바로 보이도록 디스크 수평까지 직접 맞추신 것 같다.

 

베드룸 팝 듀오 HOOHAA 였는데

 

후하가 환하지만 어둡고 거칠지만 부드러운 베드룸 팝 듀오였다는 사실은 나중에 알게 되었다. 거실이나 베란다에서 들을 수도 있었을 텐데 마침 나는 침대 위에 빵가루를 흘리면서 후하를 처음 만났다. 장르가 베드룸 팝이라니! 방에 도배를 새로 한 것도 아닌데 나의 베드룸은 새롭게 정의되었고 매일 밤 후하는 나의 꿈속으로 들어와 혼자 있는 밤이라고 늘 우울할 필요는 없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좌 성진영 우 지고

그동안 나에게 베드룸 팝이라면 [Sebastien Schuller - Weeping Willow] 같은 노래처럼 참 아름답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축축 늘어지고 쳐지다가 방바닥까지 떨어져서야 비로소 내일의 희망이 살짝 느껴지는 심리적 자해 수준의 곡들이었다. 하지만 후하는 달랐다. 맑고 밝은 것은 아닌데 후하를 듣고 나면 아침마당에 출연하는 사랑과 희망의 전도사를 만난 기분이 들었다. 후하의 데뷔 싱글 FALL 수록곡 사랑의 주문은 나에게 가장 따뜻한 WINTER 자장가가 되었다.

 

 

늦봄과 초여름 사이팝 트리오 HOOHAA

 

후하와 주문도 외우고 댄스도 추면서 행복했던 겨울이 끝나고 봄과 함께 새로운 후하를 만났다. 얼마 전까지 내가 알던 후하는 환하지만 어둡고 거칠지만 부드러운 흑백 듀오였는데... 지난겨울 그들의 베드룸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큰 변화가 느껴졌다. 환하지만 어둡고 거칠지만 부드러웠던 흑백 듀오는 그들의 기존 모습 속에 야광봉즙을 짜서 풀어넣은 것처럼 조금 더 환하고 예쁘고 아기자기한 색감의 트리오 후하가 되어 돌아왔다. 이환희 님의 영향으로 환해졌나?

 

엄청 밝아진 것처럼 썼지만 위 사진을 보니 아닌 것 같기도 하다.   

택배는 오전에 배송되었지만 이번 음악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어서, 평소처럼 취한 새벽 누추한 베드룸 환경에서 새로운 후하를 만났다. 새벽마다 꿈속으로 들어와 사랑의 주문을 외우던 후하는 아니었다. 잠시 당황했지만 다시 정신을 차리고 후하의 봄 이야기를 들었다. 그것은 새로운 주문이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라고. 봄이 왔는데 방구석에서 뭐 하고 있냐고. 감포해수욕장 민박 잡아놨으니 택시 타고 튀어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다음날 아침. 다시 만난 후하의 새로운 주문과 암호를 해독했다. FALL에서 SPRING으로 계절이 변했고 해가 길어지고 새벽이 짧아졌을 뿐, 후하가 변한 것이 아니었다. 서울의 인디팝 밴드 후하 유튜브 채널에 방문했다. 작업기와 레코딩 현장을 보니 후하는 상상했던 것보다 맑고 밝은 밴드였다. 담배연기 자욱한 반지하 베드룸 같은 작업실을 상상하곤 했었는데 그들은 신두리 해안사구에서 모래도 퍼고 웃으며 화분에 물도 주는 맑고 밝고 착하고 아름다워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후하

Hoohaa indie Pop Band Based in Seoul, korea

www.youtube.com

 

 

삼천포에 왔네. 자세한 감상 후기는 2부에서 계속

 

음... HOOHAA EP [SPRING] 리뷰를 쓰려다가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봄날에 듣기 좋은 너무 사랑스러운 인디팝이 세상에 나왔다고 소개하고 싶었는데 삼천포로 빠진 것 같다. 일단 오늘은 퇴근해야 하니 급히 마무리하자. 후하의 첫 EP [SPRING]을 감상하며 내 맘대로 장르를 붙이자면 '사이팝'이라 할 수 있겠다. 쓸쓸하지만 초라하지 않은, 나른하지만 춤은 추고 싶은, 늦봄과 초여름 사이 같은 인디팝 밴드 후하! 그들의 남은 계절 여름과 겨울도 궁금해진다. 

 

괜히 싱숭생숭하고 잡생각도 많아서 봄도 싫고 방구석도 싫고 나도 싫고 너도 싫은 사람이 있다면 후하의 곡들을 꼭 검색해서 들어보시길 추천한다. 물론 혼자 들어야 더 매력적일 것 같다. 그리고 Boy Pablo 좋아하는 분이라면 후하의 곡 중에서 ALONE 뮤직비디오를 아주 기분 좋게 감상할 수 있을 것 같다. 끝으로 대한민국 서울의 인디팝 밴드 HOOHAA 후하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 아래 링크에서 후하를 먼저 만나보시는 것도 좋겠다.

 

HooHaa - Alone 뮤직비디오 감상하기


지니뮤직 후하 인터뷰 20문 20답

 

이내 사랑에 빠져들 인디팝, 후하의 [Spring] TMI 20문 20답 - 지니

AI기반 감성 음악 추천

www.genie.co.kr

베드룸 팝 듀오 시절의 후하 소개 페이지

 

후하 HooHaa

“흔히 생각하는 신나는 춤의 느낌이 아닌 포근하고 느리게 흘러가는 느낌의 춤을 표현했다.” - 유진경(포크라노스)

www.notion.so

후하의 첫 EP [SPRING] 텀블벅 프로젝트

 

이내 사랑에 빠져들 인디팝, 후하 첫 EP [Spring]

이상하게도 너무 선명한 어떤 계절들에 대해 노래하고 있는 후하의 첫 EP [Spring]

www.tumblbug.com


HOOHAA [SPRING]

 

alone

기억(Short Memory)

너의 능력

한참을 보았지

우표를 붙여요

 

Produced by 단편선@오소리웍스

Music & Words by 후하

English Lyrics by Andrew Boram Lee

Arranged by 후하, 단편선

Recorded, Mixed by 천학주@머쉬룸레코딩스튜디오

Mastered by 강승희@소닉코리아마스터링스튜디오

 

 

*

개인적으로 지고 님의 목소리에 반해서 <alone>과 <한참을 보았지> 두 곡을 자주 듣고 있는데 <한참을 보았지> 가사가 좋아서 자꾸 따라 부르게 된다. 대한민국 가사에 샐쭉이라는 가사가 들어가는 곡은 처음이라 그런지, 샐쭉거리던 입 나올 때 나도 모르게 입을 샐쭉거린다. 아닌가? 내가 하는 샐쭉은 사실 샐쭉이 아닌 다른 표현이 맞을 수도 있겠다는 찜찜함을 남기며 1부를 끝낸다.

 

 

1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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