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자신의 일상을 한탄하다가 떠오른 한탄강

 

여름 휴가도 없이 일하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계절은 바뀌어 가을이고 곧 겨울이 올 것 같습니다. 늘 멀리 떠나고 싶은 마음을 품고 있었지만 그 어디에도 여유가 없다는 핑계로 스스로 가두고 혹사하며 살았던 것을 깨달았네요. 그런 일상을 한탄하다가 한탄강을 떠올렸습니다.

 

하루종일 머물다가 떠나려는 순간 한탄강 모습

 

 

그냥 갑자기 물멍이 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그냥 갑자기 물멍이 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요즘 주말에는 어디를 가든 사람이 많아서 가는 길도 오는 길도 지칠 것 같았지요. 그래서 한탄강을 떠올렸던 것이고 아무도 없는 곳에 작은 의자 하나 펼치고 앉아서 물멍할 수 있는 곳을 원했습니다. 그런 목적으로 지도를 살펴보다가 발견한 곳이 포천에 있다는 화적연입니다.

 

화적연을 드디어 만났다.

 

 

 

 

 

 

명승 93호 포천 화적연  

 

명승 여행을 다니시는 분들께도 잘 알려진 이곳은 평일에 가면 사람이 진짜 없다고 합니다. 평일 오전에 도착할 수 있게 출발하기로 정하고 휴가를 신청했습니다. 물멍을 하러 가는 곳이지만 그래도 어떤 곳인지 정보가 필요하여 찾아보았습니다. 조용히 흐르는 물 위에 큰 바위가 있는 사진이 많이 보였는데 사진만 봤을 때 명승치고는 그렇게 아름다워 보이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그곳에 제가 도착했을 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운 광경에 큰 감동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화적연 주차장에서 화적연을 향해 가는 길

 

 

 

 

화적연이 왜 명승인지 눈과 몸과 마음으로 느끼다

 

화적연은 명승이었습니다. 주차장에서 출발해서 표지판을 보며 숲길을 걷다가 나뭇가지 사이로 살짝 보이기 시작하는 화적연의 모습은 조금씩 가깝게 다가갈수록 웅장해지더니 아무것도 가리지 않는 물가에 도착했을 때는 엄청난 규모의 아름다움에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했습니다.

 

커다란 괴물이 살고 있는 것 같다.

 

 

당장 옷을 벗고 물에 뛰어들어 헤엄치고 싶었지만

 

아주 오래전 화적연을 좋아했던 조상들은 여기서 헤엄도 치고 바위 위에서 다이빙도 하며 즐겁게 물놀이를 했을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너무나도 아름다운 물과 바위와 하늘과 공기 속에서 조용히 머물며 지금의 저처럼 물멍을 때리고 있었을 것 같기도 합니다.

 

괴물을 정면에서 쳐다보았습니다.

 

 

화적연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화적연은 문화재청에서 관리하는 명승으로 제 93호 명승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경기도 포천 한탄강 상류에 위치한 화적연은 연못과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는데 연못이라기 보다는 힘차게 흘러내리던 한탄강 물줄기가 커다란 화강암괴와 만나면서 굽이쳐 흘렀던 흔적 같았습니다.

 

고고학적 혹은 지질학적 한탄강 주상절리 생성 시기 등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는 과정까지는 모르겠지만 한반도에 화산이 폭발했던 순간부터 시작된 한탄강의 역사가 모두 담긴 곳이 아닐까요? 지금 이순간도 끊이지 않고 흐르며 한탄강의 물과 화적연의 화강암괴는 계속 스치고 어루만지며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그늘을 찾아 외진 곳에 의자를 펼쳤어요. 괴물의 꼬리 쪽.

 

 

화적연 전설과 기우제

 

화적연은 조상들이 기우제를 지내는 기우제터로 알려져 있는데요. 전설처럼 내려오는 재미있는 설화가 있습니다. 어느 날 한 늙은 농부가 3년동안 이어지는 심각한 가뭄에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하늘을 원망하면서 바로 이곳, 화적연에 앉아 한숨을 쉬면서 "이 많은 물을 두고서 곡식을 말려 죽여야 한다는 말이냐? 하늘도 무심커니와 용도 3년을 두고 낮잠만 자는가보다." 이렇게 탄식을 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화적연의 물이 왈칵 뒤집히면서 용의 머리가 불쑥 솟아오르더니 꼬리를 치며 하늘로 올라갔는데! 신기하게도 바로 그날 밤부터 비가 내려 풍년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때부터 이 포천 지방에 가뭄이 들면 화적연에서 기우제를 지내는 풍습이 생겼다고 합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읽고 다시 화적연을 바라보니 정말 용이 한 마리 꿈틀거리다가 곧 하늘로 날아오를 것 같기도 합니다. 악어 같기도 하고 달팽이 같기도 했었는데 용이라고 하니 진짜 용처럼 멋지네요.

 

 

내가 감탄한 이 광경을 겸재 정선도 함께했다

 

화적연에 머물며 이런 저런 생각도 정리하고 나에게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주는 물멍의 대상 화적연이 어떤 곳인지도 알아보던 중 엄청난 감동의 순간이 있었는데요. 조선왕조실록에도 화적연에 대한 다양한 기록과 기우제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고, 특히 조선시대의 유명 화가들이 화적연의 아름다운 모습을 직접 그림으로 남긴 실경산수화가 존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과연 조선시대의 화적연은 지금과 같은 모습이었을까요? 그리고 조선시대 유명 화가들의 눈에는 화적연이 어떤 곳이었을까요?

 

 

겸재 정선의 화적연도

 

겸재 정선은 금강산으로 가는 길에 이곳을 지났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 제가 있는 포천 화적연을 지나고, 철원의 삼부연 정자연을 거쳐 한탄강 절경을 보고 즐기며 그림으로도 남겼다고 하는데요. 아래에 있는 그림이 겸재 정선이 그린 화적연도라고 합니다. 제가 물멍하면서 바라본 화적연과는 다른 방향의 그림 같은데요, 아쉽게도 저 그림을 그린 곳으로 가려면 물을 건너 산도 올라야 해서 저는 겸재의 시선과 맞춰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래도 겸재와 같은 공간에 머물렀네요.

 

겸재 정선 화적연도

 

학산 윤제홍의 화적연도

 

겸재 정선 외에도 많은 화가들이 화적연의 아름다움을 담았다고 전해지는데요. 아래 그림은 학산 윤제홍이라고 하는 조선후기 화가의 작품이라고 합니다. 윤제홍의 화적연도가 제가 본 모습과 더 닮았는데요 우뚝 솟은 바위 부분의 크기가 실제와 다른 것을 보니 아무래도 제가 본 화적연의 바위는 상단이 역사가 흐르는 사이에 파괴된 것 같기도 합니다.

 

아쉽네요. 저렇게 온전히 머리를 세우고 있는 용의 형상을 봤어야 하는데 정말 너무 아쉽습니다. 혹시라도 파괴되기 전 화적연의 사진을 구할 수 있으면 꼭 보고 싶네요. 사진으로라도 한탄강 역사 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 중 하나를 꼭 만나보고 싶습니다. 역사의 흐름이니 아쉬워도 지금의 모습 앞에서 잠시 머물며 저도 역사 속 방문자가 되어봅니다.

 

윤제홍의 화적연도

 

 

 

 

 

화적연, 이런 분께 추천합니다.

 

저는 평일 오전에 도착해서 어두워지기 전까지 머물렀어요. 저처럼 혼자 조용히 혹은 쓸쓸히 고독과 함께 머물고 싶은 분께 추천합니다. 자연 속에서 많은 이야기 나누고 싶은 연인과 친구에게 추천합니다. 하지만 2021년 12월 초까지 화적연 주변 큰 공사가 있는 것 같습니다. 화적연 감상에 큰 문제는 없을 수 있으나 11월 한 달동안 공사 소음이 심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떠났거든요. 방문 전에 꼭 확인하시길! 

 

가족과 함께 가신다면! 자연 풍경을 좋아하신다면 짧은 시간 큰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곳이겠으나, 좀 더 활동적이고 제대로 된 관광지 느낌을 원하시는 분들께는 오히려 매우 실망스러울 수 있으니 방문 전 다시 고민해보시길 바랍니다. 주차장도 잘 마련되어 있고 접근성도 좋습니다만 아이들이 좋아할 공간이나 놀거리는 없으며 그늘이 부족해서 모자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끝.

728x90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네이버 밴드에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