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근의 끝. 그리고 월요일 휴가
지난 일주일 끝없는 야근을 마치고 홧김에 그리고 살기 위해서 월요일 휴가를 결정했습니다. 토요일부터 월요일, 2박 3일의 자유가 생겼지요. 원래 계획은 방광이 터질 때까지 잠만 자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또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그냥 그렇게 멍하니 보내기는 싫더라고요. 멍을 때리더라도 어디든 공기 맑은 곳에서 조용히 멍을 때리고 싶어졌지 뭐에요. 그래서 오래 전에 갔다가 좋은 기억만 남았던 철원 가산농원캠핑장을 예약했습니다.
철원 가산농원캠핑장이 나를 기다리네.
단풍시즌은 거의 끝났지만 그래도 주말이라 차가 많이 막혔네요. 졸음운전할까봐 허벅지를 꼬집으며 살살 안전운행하며 도착한 철원은 정말 날씨가 좋았습니다. 캠핑 기간 날씨를 검색해보니 일요일에는 비 예보가 있네요. 화창한 날씨와 하늘과 공기를 즐기려면 오늘 토요일에 최대한 노력해야겠습니다. 캠핑장 앞에 이미 도착한 차량들이 인원 파악 및 체온 측정을 하며 줄 서 있었어요. 잠시 기다리면서 파란 하늘을 보고 사진도 찍어봤습니다.
철원 가산농원캠핑장 입구
철원 가산농원캠핑장 입구입니다. 입구에서 사이트 위치에 따라 양쪽으로 길이 나뉘는데 저는 H구역이라서 오른쪽으로 통과할 예정입니다. 입구에 본사 건물이... 관리실이 있고요, 여기서 편의점 역할도 하고 있어서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거나 문의사항을 확인할 수 있겠습니다. 오랜만에 왔지만 사장님 얼굴은 그대로시네요. 물론 저를 기억하지는 못하시겠지만 반갑게 인사하며 안내사항을 전달받았습니다.
왜 캠핑장 이름 앞에 농원이라는 말이 있느냐?
캠핑장이 만들어지기 전에 대규모 농원이었던 땅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장님께서 농사를 지으면서 캠핑장도 함께 운영하고 계시네요. 계절에 따라 체험학습도 가능하다고 하니 아이들과 함께 경험해보고 싶은 마음도 생겼어요. 하지만 오늘은 영하 날씨가 예상되는 겨울 캠핑이라서 마음에 여유가 없네요. 겨울 캠핑은 처음이라서 살짝 두렵기도 합니다. 관리소에 들어가니 가산농원에서 직접 농사 짓고 정성으로 담근 각종 효소도 판매하고 있어요. 블루베리, 왕대추, 개복숭아, 체리, 사과, 자두, 오디 등 정말 많은 과실로 효소를 담그시나봐요.
가산농원캠핑장 H구역을 찾아라!
저는 H구역을 예약했는데 너무 늦게 예약하는 바람에 가산농원캠핑장 홈페이지에서 사이트를 지정할 수는 없었고 그냥 남는 자리를 하나라도 받기 위해서 급히 네이버로 랜덤 예약을 했습니다. 역시 전망 좋은 사이트는 이미 지정 예약이 되었고 H-6 사이트를 배정 받았습니다. 개수대와 쓰레기 분리수거장, 그리고 화장실도 바로 옆이라서 아주 편리하겠지만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골목이라서 파쇄석 사각거리는 소리가 끊이지 않을 것 같습니다. 뭐 어때요. 그래도 좋아요. 저는 이번 캠핑에서 세상 모든 소리를 벗삼아 자연 속에서 멍을 때려보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잠시 샤워장 및 전자레인지 체크
지난 일주일 야근만 하다가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출발하는 바람에 당장 샤워부터 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당장 햇반 좀 데위 먹어야해서 샤워장과 전자레인지를 체크하고 햇반을 뜨겁게 돌려봅니다. 3분 기다리면서 화장실 내부 소개를 하기 위해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찰칵 소리 크게 나도록 사진 찍어봤어요. 당연히 화장실 내부는 절대 금연입니다. 그리고 샤워장은 코로나 때문에 여러 명이 동시에 이용할 수 없도록 이용 방법을 정리해서 붙여 놓으셨어요. 물이 너무 뜨거워서 화상 주의라는 말을 보니 마음이 든든합니다. 온도 조절 잘 해서 뜨거운 물로 지친 몸과 피곤한 마음을 달래봅니다.
벌써 많은 분들이 자리를 잡으셨습니다.
H구역으로 가는 길. 벌써 많은 분들이 자리를 잡으셨고 행복한 대화 나누시며 자연을 만끽하고 계시네요. 참 보기 좋습니다. 캠핑장에 오면 당장 내 텐트 치고 먹고 자는 것이 걱정이지만 같은 목적으로 모인 사람들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즐기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되기도 합니다. H구역으로 가는 길 바닥에 왠 대추열매가 떨어져 있더니 길 이름이 대추나무 길이네요. 예전에 왔을 때는 없었는데 길도 예쁘게 다듬어 놓으시고 심지어 잉어떼가 헤엄치는 인공 호수도 만들어 놓으셨어요. 그리고 인공호수 위에 서서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다리 혹은 스카이워크 같은 시설도 마련해주셔서 아이들과 엄마 아빠가 잉어밥을 주고 있었어요.
가산농원캠핑장의 H구역 6번 사이트
도착했습니다. 철원 하늘 아래 가산농원캠핑장 H구역 6번 사이트입니다. 제가 사용할 배전반 위에 싱싱한 대파 한 단을 일단 올려두고 릴선을 준비 후 잠시 쉬었습니다. 다른 일반 캠핑 사이트보다는 조금 비싸지만 주변에 조금 더 여유 공간이 있고 나무 데크에 비가림막까지 있는 좋은 시설이었습니다.
헉헉헉헉 텐트 치고 밥 먹고 나니 밤이네요.
뭔가 기록할 시간도 없었습니다. 말 그대로 텐트 치고 밥 먹고 나니 밤이 되었거든요. 고릴라 캠핑에서 구입한 참나무 장작을 꺼내서 활활 불태워봅니다. 본격 불멍이 시작될 무렵 H-7 사이트에서 손님이 오셨어요. 현역 군인과 가족 혹은 지인들이 캠핑 중이셨는데 군용 참깨건빵을 선물로 주고 가셨습니다. 이렇게 캠핑 이웃과 정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것은 정말 행운인 것 같습니다. 기분이 더 좋아졌어요. 저는 맛있는 감귤을 건네며 인사드렸습니다. 참나무 장작 불멍과 군용 참깨건빵을 동시에 즐기며 앉아 있으니 옛날 생각이 많이 나네요.
H구역의 개수대 및 쓰레기 분리수거장
캠핑장에 메인 시설이 있지만 H구역과 카라반 구역은 멀리 떨어져 있어서 걱정이었는데, 사장님께서 정말 멋지게 새로운 시설을 만들어 두셨습니다. 개수대 2개와 분리수거장, 그리고 대규모 조립식 화장실을 제작해서 크레인으로 끌고 와서 떡하니 내려놓았더라고요. 화장실도 관리가 잘 되고 있어서 아주 깨끗하게 잘 이용했습니다.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면 임시 개수대라서 온수가 나오지 않고 그릇을 씻은 후 잠시 올려둘 선반은 없었어요. 겨울 캠핑에서 설겆이를 꼭 온수로 해야 하시는 분은 H구역은 차가운 물만 나오니 참고하세요!
푹 자고 일어나서 오뎅탕을 끓였습니다.
어묵이라는 말도 있지만 오뎅이 더 어울리는 오뎅탕이었습니다. 육수도 맛있고 오뎅도 맛있고 팔팔 끓이면서 펑펑 불어난 오뎅은 너무 커져서 냄비를 넘쳐흘렀고 국물이 너무 맛있어서 오뎅도 다 먹고 국물도 다 마셨더니 배가 터질 것 같았습니다. 위장이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하더니 갈비뼈를 바깥 쪽으로 밀기 시작하더군요. 이대로 더 먹다가는 갈비뼈가 부러질 수도 있을 것 같아서 후식으로 준비했던 다양한 과자와 음료는 다시 가방에 넣었습니다. 잠시 소화시키면서 온갖 상상을 했는데 오뎅이 갈비뼈를 부러뜨리는 사건이 현실로 발생하면 응급실로 실려가면서 많이 부끄러울 것 같았어요.
나무 이름은 모르겠지만 참 예쁜 나뭇잎과 하늘을 만났습니다. 나뭇잎 테두리가 안쪽으로 살짝 말려 들어가면서 예쁜 모양을 만들었고 색감도 참 우아한 오렌지빛이었어요. 홍시 색깔 혹은 한화생명 로고에 쓰인 주황인데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컬러라서 곤란하네요. 아무튼 정말 예쁜 나뭇잎이었습니다.
소화도 시킬 겸 가산농원 주변 산책
천천히 걸었습니다. 심하게 움직이면 부풀어 오른 위장에 갈비뼈 끝 날카로운 부분이 닿으면서 위장이 터질 것 같았거든요. 걸을 때마다 오뎅과 오뎅국물이 출렁거리다가 식도까지 다시 역류하는 기분이었어요. 예를 들자면 자동차 본네트를 열고 워셔액을 들이 붓다가 잠시 딴생각하는 사이에 좁은 통 모가지까지 워셔액이 차오르면서 넘치는 그런 기분이라고나 할까요? 오뎅 향기와 함께 숲길과 산길을 걷다가 넓은 평야에 도착했습니다. 추수가 끝난 논두렁에 앉아서 하늘도 또 보고 바람도 느끼다가 거미도 보고 지네도 보고 베짱이 같은 곤충도 만났네요.
위장과 식도까지 오뎅으로 가득한데 점심시간이 되었네요.
큰일입니다. 아직 오뎅이 뱃속에서 탱글거리고 오뎅국물이 식도를 역류해 오전내내 오뎅국물을 마시고 있는 기분인데 점심시간이 되었어요. 그런데 더 심각한 것은 그런 상황에서도 열심히 준비한 식단을 지키고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재료를 소진하기 위해 저는 점심 식사를 준비합니다. 오전은 오뎅, 점심은 떡볶이입니다. 준비해온 고추장과 설탕에 물을 붓고 소중하게 가지고 왔던 싱싱한 대파를 송송 썰어 넣었습니다. 바글바글 끓이다가 곧 치즈떡과 남은 오뎅을 다 넣을 계획이에요. 배가 불러 죽을 것 같은데 떡볶이는 너무 맛있을 것 같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밥 먹고 또 밥 먹고 저녁이 되었습니다.
일요일 오후 캠핑장이 조용할 것은 예상했지만 이렇게 모두 썰물처럼 빠져나가실 줄은 몰랐어요. 제가 맛있게 떡볶이를 먹는 동안 한 집씩 떠나시더니 이렇게 저만 떨렁 H구역에 남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제부터 가산농원캠핑장의 H구역은 이제부터 제껍니다. 음악도 크게 틀어봅니다. 오뎅 포장 비닐을 자세히 살펴보니 공장의 위치가 부산 감천동입니다. 부산에서 태어난 오뎅으로 아침과 점심을 연속으로 먹었더니 문득 부산에 가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음악 선곡은 부산의 아티스트를 골라서 들어봤습니다.
부산이 생각나는 음악을 선곡하며 해지는 철원 하늘을 바라봅니다. 부산의 명사수 정상수가 계속해서 매섭게 쏘겠어를 외치며 저에게 현피를 요청했습니다. 너무 무서워서 현피를 피하기 위해 부산의 힐링팝 밴드 세이수미를 틀어보았습니다. 하지만 한겨울에 세이수미의 음악은 너무 이질적이어서 지금 저의 모습처럼 지치고 피곤하고 처절하게 외롭고 쓸쓸해도 어떻게든 오늘을 내일을 살아갈 힘을 주는 김일두의 노래를 감상합니다. 그래요, 저는 지금 문제없어요. 문제없어요. 문제없어요. 문제없어요. 문제없어요만 끝없이 반복하다가 숲속에서 잠들었습니다.
아... 벌써 월요일 아침입니다.
김일두가 문제없다면 문제없는 것이겠지요. 문제는 제가 그냥 노래 듣다가 잠이 들었는데 방광도 저를 깨우지 못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신기하지요? 오뎅국물만 거의 10리터는 마시고, 짜고 매운 떡볶이를 먹고 싸구려 생수를 벌컥벌컥 2리터는 마시고 잠든 것 같은데 제 방광은 제 깊은 잠을 깨우지 못했어요. 방광 기능에 문제가 있었던 것일까요? 제가 너무 행복한 꿈을 꾸느라 방광을 잠시 꺼두셔도 좋았던 것일까요? 결론은 다시 아침이 되었습니다. 텐트 밖으로 나가니 세상이 온통 안개 속입니다. 안개를 뚫고 미스트를 쳐맞는 기분으로 화장실에 갔습니다. 소변이 나오기 시작하더니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계속 소변이 나옵니다. 가산농원캠핑장 지하수에 희석된 제 소변이 개복숭아와 왕대추를 더욱 맛있게 만들어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길고 긴 소변이 끝났습니다.
소변이 끝나자, 제 여행도 끝났습니다.
물을 내리고 지퍼를 올렸습니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집으로 가야겠습니다.
내일부터 또 야근이 시작됩니다.
늘 감사합니다.
쓸쓸한 저를 포근하게 감싸주는
철원 가산농원캠핑장에 고마운 마음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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