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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혜화동 골목을 걷고 싶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도 좋지만 반복되는 일상에 지치고 힘들 때면 혜화동 골목이 그립습니다. 코로나의 시대를 살면서 최근 가장 행복했던 날이 언제였을까 생각해보면 친구들과 대학로에서 연극 보고 낮술에 취했던 어느 봄날이 떠오르네요. 대학로 번화가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구석구석 예쁜 골목이 이어집니다. 골목을 걷다 보면 오랜 세월 그 자리를 지켜온 주택들이 보이는데요. 우연히 만났던 독일주택을 잠시 소개하고 싶네요.

 

대학로 독일주택의 입구

 

독일주택은 독일맥주 전문점이 아니었어.

처음에 친구들과 갔을 때 당연히 독일맥주 전문점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메뉴판을 보니 생맥주, 병맥주, 위스키, 와인, 그리고 칵테일까지 정말 다양한 술이 있는 곳이었어요. 친구가 독일맥주 마시러 왔다고 하니 직원 분이 친절하게 독일주택의 의미에 대해서 소개해주셨습니다. 저와 친구들은 모두 충격을 받았죠. 독일주택의 주가 술 주(酒)였군요! 그래 오늘 우리 낮술 마시러 왔으니 독일맥주든 뭐든 마시고 놀자 하며 정말 취하도록 마셨던 기억이 납니다. 

 

취한 후에 알았지만 커피와 차도 있었어요.

 

독일주택 의미를 알고 나면 더욱 매력적인 공간

 

독일주택. 독일맥주도 아니고, 독일음식도 아니고, 사장님이 독일사람도 아니라고 하는데. 독일주택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한자로 만들어진 이름이었습니다. 독일주택을 한자로 쓰면 이렇게 됩니다.

 

독일주택 / 独一酒択

 

独 : 홀로 독

一 : 하나 일

酒 : 술 주

択 : 가릴 택

 

직원 분께 설명을 들었던 독일주택의 의미는 "홀로 한 잔의 술을 마시네". 와~ 정말 멋지지 않나요? 처음 갔을 때는 친구들과 수다 떨다가 그 분위기를 제대로 느끼지 못했는데요. 독일주택은 늘 사람이 많고 저녁에는 줄도 서서 기다려야 한다는 소문을 듣고 제가 선발대로 가서 아무도 없는 독일주택 공간 사진을 찍었었거든요. 세월이 흘러 그 사진을 보니 고즈넉한 한옥 대문과 담벼락, 작지만 아늑한 마당, 우아한 타일과 가구들. 특히 원래 평범한 한옥 가정집이었던 곳을 있는 그대로 유지하려고 노력한 흔적들을 보면서... 나중에는 친구들 배신하고 혼자 와서 낮술 마시고 싶었습니다.

 

마당이 마당이 너무 예뻐요.

 

마당에서 보이는 모든 뷰가 예술이다.

 

지금 집에서 청하 한 병 까면서 쓰느라 잠시 흥분했는데요. 아무튼 독일주택은 독일맥주집 아닙니다. 홀로 한 잔의 술을 마시네 라는 어딘가 쓸쓸하면서도 우아한 숨은 의미가 있는 가게였어요. 아마도 마지막 글자인 택은 가리다 이런 뜻 말고 고르다 선택하다 이런 의미로 해석을 적용한 것 같네요. 마케팅 업계에 일하는 친구의 말로는 진짜 의미가 잘 느껴지지 않더라도 우리나라에는 맥주하면 독일맥주를 먼저 떠올릴 수 있기 때문에 참 잘 지은 이름이라고 하더군요. 맞아요. 저도 숨은 의미를 알고 너무 재미있었고 그 의미를 제대로 느낄 수 있게 혼자서 한 잔 하러 다시 가고 싶었으니까요.

 

입구 바로 앞에 사랑방 같은 룸도 있었어요.

 

 

그럼 제가 찍은 독일주택 구경 좀 할까요?

입구는 이리 오너라~ 하고 싶은 나무 대문이 있습니다. 들어와서 바로 왼쪽에 작은 방이 하나 있는데 작은 테이블이 여러 개 있었고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이야기하기 좋은 구조 같았어요. 입구를 지나 마당에 도착하면 또 하나의 방이 있는데 여기는 직원 분이 별채라고 부르고 있었습니다. 여기가 바로 저희가 미친 듯이 마시고 취했던 방인데 큰 원형 테이블이 있고 완전히 독립된 공간이라서 안심하고 더 떠들고 더 취했던 것 같아요. 밖으로 우리 목소리가 얼마나 들리는지 알 수가 없어서 정말 심하게 막 놀았는데 이제 와서 생각하니 좀 죄송합니다.

 

별채라고 부르던 큰 방

 

독일주택 마당에 있던 화병

 

독일주택의 마당에 있던 대나무 정원

 

진짜 멋진 곳은 독일주택 본관?

저는 사람도 많고 수다 떠는 모임이라서 별채가 좋았지만. 독일주택의 진짜 멋진 공간은 바로 여기 본관인 것 같았어요. 한옥의 나무 구조물(나무 기둥 말고 뭐 전문 용어가 있었던 것 같은데 모르겠네요.)이 그대로 살아 숨 쉬고 있던 본관은 바닥도 완전 제 취향이었는데 타일 하나 뜯어가서 비누 받침으로 쓰고 싶은 마음이었어요. 타일 사진도 아래에 보여드릴게요.

 

독일주택의 본관 조명도 예쁘다.

 

본관의 왼쪽에 보면 바가 있는데 정말 다양한 술잔이 찬장에 진열되어 있거나 천장에 매달려 있었습니다. 와인잔, 맥주잔, 칵테일잔 등 소주잔이 안 보여서 아쉬웠지만 눈에 보이는 모든 잔에 독일주택 메뉴판에 있는 모든 술을 하나씩 다 맛보고 싶었어요. 그날은 맥주와 와인만 마셨는데 나중에 혼자 오면 바에 앉아서 직원 분과 수다 떨며 칵테일과 위스키도 마셔보고 싶습니다. 직원 분은 바빠서 늙은이와 수다 떨어줄 시간이 없을 가능성이 높으니 제 옆 자리에 멋진 누군가... 응? 

 

잔을 채워! 마셔! 마셔!

 

대학로 소개팅 명소로 소문난 독일주택

아, 소개팅 하고 싶다. 에휴. 코로나 때문에 맨날 집에만 있어서 저만 답답한 줄 알았는데요. 위축된 세상의 분위기 때문에 연인을 만날 기회조차 없었다고 느끼던 젊은이들의 연애 욕구가 폭발하여 전국 모든 술집에 소개팅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고 하죠. 저는 태어나서 소개팅을 한 번도 못해봐서 그냥 갑자기 소개팅이라는 것을 해보고 싶네요. 아, 갑자기 왜 소개팅 타령이냐... 독일주택이 요즘 소개팅 명소로 뜨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아무래도 처음 만나는 이성과 이자까야에서 소맥보다는 고풍스러운 한옥에서 더 맛있는 맥주와 레드와인이 좋을 것 같네요. 성공 확률도 그만큼 높아지겠죠. 저는 지금 반려인간과 처음 만났을 때 포장마차에서 막걸리를 마셨습니다.

 

2부는 대학로 데이트 코스에 포함시켜야 할 숨은 예쁜 골목 예정입니다.

그럼 이만 1부를 마치고, 한때 주변 모솔들 모두 연애시킨 찐연애컨설턴트 선지가 분석한 대학로 소개팅 명소와 처음 만난 사람과 마시기 좋은 술과 안주, 그리고 절대로 내뱉어서는 안 될 쓰레기 멘트. 그리고 가장 중요한 대학로 데이트할 때 꼭 함께 걸어보면 좋을 구석구석 예쁜 골목 시리즈로 찾아뵙겠습니다. 2부에서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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